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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첨단연예소식

이봉주 은메달 따고 국민영웅 된 사연

by №℡ 2021. 3. 2.

■□ 이봉주

대한민국의 前 마라토너이며, 손기정과 황영조의 뒤를 이은 대한민국 마라톤계의 대표 스타로 불린다.

 

이봉주는 화려한 대회 성적을 자랑하는데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및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1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을 기록했다.

이봉주가 은퇴한 이후 후계자라 할만한 육상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어 "사실상 한국 마라톤과 육상계의 마지막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경력을 보면 올림픽 금메달이 없어서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 아쉬운 은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라톤의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금메달을 획득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조시아 투과니' 선수와 아쉽게도 단 3초 차이였는데, 이것은 역대 올림픽 마라톤 사상 최소 1·2위 격차였다.

같은 해 12월 1일에 열린 일본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스페인의 '알베르토 후 스타도' 선수를 2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이 대회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 게임 같은 대회처럼 비중 있는 대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서 첫 뉴스가 후쿠오카 마라톤 우승에 관한 보도였을 정도로 이봉주와 투과니와의 리턴 매치가 주목을 받았던 경기였다.

하지만 아프리카 출신 조시아 투과니는 진눈깨비가 날리는 일본의 영하 날씨에 적응을 못하여 기권하였다.

■□ 아름다운 은메달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 대한 대접은 이봉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봉주 이전까지 금메달 문턱에서 물러선 대한민국 선수에 대한 언론의 기사 내용은 대개 은메달에 그쳤다, 동메달에 머물렀다는 식의 부정적 표현이 많았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 이후로는 유도 남자 71kg급의 곽대성이 일본의 나카무라 켄조와의 결승에서 통한의 판정패를 당하자 그 자리에서 엎어져 주먹으로 매트를 치며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중계되었고, 기계체조 남자 도마의 여홍철이 결선 1차 시기에서 1위에 오르고도 2차 시기에서 발목을 잡혀 2위로 처지자 인터뷰 도중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지나치게 금메달에만 집착한다는 편견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만 바라고 매일 매일 지옥 훈련을 견뎌왔던 선수들 입장에서는 사무칠 정도로 아쉬운 것이 당연하다.

그만큼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갖는 주목도와 상징성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위와 불과 3초 차로 금메달을 놓치고도 1위를 차지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와 손을 잡고 발맞추어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도는 이봉주의 모습은 한국인들에게 은메달로도 기뻐하는 선수가 있구나 하는 충격을 심어주었다.

다음 날 각 신문도 이봉주의 은메달 소식을 1면에 이봉주의 골인 순간 사진까지 실어서 대서특필했는데, 이봉주 이전에 타 선수의 은메달 소식을 1면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보도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봉주는 한국에서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은메달로 중앙 일간지 1면에 대서특필 된 최초의 선수가 된 것이다.

자연히 국민들과 선수들과 언론들에게도 은메달을 아쉬운 것이 아닌, 금메달보다 값진 것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이봉주 이후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언론은 은메달에 그쳤다는 부정적 표현 대신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 금보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은메달이라는 긍정적 표현을 더 자주 쓰게 되었고, 국민들도 최선을 다해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질타나 아쉬움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더 크게 보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메달을 따고 대역죄인처럼 석고대죄하며 시상대 위에서 고개를 떨구던 선수들의 모습은 이봉주 이후로 눈에 띄게 줄었다.

이봉주 바로 다음 차례로 2000 시드니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은메달리스트인 강초현은 시상대에서 금메달리스트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며 활짝 웃었다.

또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럽 출신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덴마크에 패해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2021년 현재까지도 졌잘싸의 가장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는 올림픽 피겨 사상 최악의 홈 텃세와 편파 판정을 당해 올림픽 2연패가 무산되고도 활짝 웃으며 자신이 충분히 차지할 수 있었던 금메달리스트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를 축하했다.

즉, 이봉주가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얻은 은메달은 단순한 은메달 1개가 아니라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 대한 한국에서의 선수, 언론, 국민들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념비적인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이봉주가 남긴 '금메달 만큼 값진 은메달' 신화는 국민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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