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축구 영웅 우리 곁에 잠들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웅인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향년 5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7일 인천 구단에 따르면 췌장암 투병 중이던 유 전 감독은 오후 7시쯤 서울 아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상철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주역 중 하나다. 그는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에서 쐐기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월드컵 첫 승을 이끌었다.
주요 개인 수상
-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4, 1998, 2002
- K리그 득점왕 수상: 1998
- FIFA 세계 올스타 선정: 1998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 FIFA 월드컵 올스타 선정: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2002
- 험멜코리아-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공격수 부문 선수상 수상: 2002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MVP: 2003
- 제18회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수상: 2004
대한민국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전천후 멀티플레이어이며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이다. 또한 홍명보와 함께 2002 월드컵 공식 BEST 11에 선정된 한국 축구계의 전설이다.
1994년 3월 미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후 2005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였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 한일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이후 '한일전의 사나이'란 별명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상철은 한국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만능형 멀티 플레이어이다. 프로 데뷔는 윙백으로 했으며, 대표팀 데뷔는 스위퍼로 했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두 가능한 만능형 멀티플레이어다.
K리그에서는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로 모두 올스타에 뽑혔고 특히 공격수로 뛰면서 득점왕까지 했으니 이 정도 수준의 멀티플레이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하며 해외 선수로 범위를 확대한다 해도 네덜란드의 루드 굴리트와 필립 코퀴 정도 말고는 그 사례를 찾기가 힘든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야말로 한국의 루드 굴리트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선수이다.
멀티플레이어로서의 활약은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가 중용하며 두드러졌다. 유상철 한 명으로 모든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니 교체 선수에 따라 그만큼 전술의 폭이 넓었는데, 그 백미는 바로 16강 이탈리아전이었다.
춘천 기계공고 축구부 창단 감독과 대전 시티즌, 전남 드래곤즈,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하지만 2019년 11월 19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임을 밝혔다. 그 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지만, 2021년 6월 7일 향년 49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FC 바르셀로나 이적
유상철의 실력이 정점에 달했을 무렴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FC 바르셀로나 이적설이다. 1998~1999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는 기사까지 나오며 기대감을 높여 주었다.
1998년 여름 FC 바르셀로나의 루이 반 할 감독은 아약스의 로날드 데 부어, 프랑크 데 부어를 영입하고 싶어 했으나 성사되지 않아서 그 대안으로 유상철을 테스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유상철은 어떤 이유에선지 테스트를 받지 않았고 FC 바르셀로나 이적은 안타깝게 불발로 끝나고 만다.
이후 2019년 5월 유상철이 직접 언론과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즉시 영입이 아니라 입단 테스트여서 스스로 거부했고, 에이전트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마치며
대한민국 축구계의 한획을 그은 유상철 선수. 대한민국의 축구 영웅인 그가 우리 곁을 떠나 많은 축구계 인사와 동료들 그리고 팬들이 슬픔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삼가 고인에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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